2009/05/24 청계천,덕수궁 근처 풍경 및 조문기...

날씨가 너무 좋은데 늦잠자다 12시넘어 일어나


 

점심먹고 두리번하다가

 

이런날씨좋은날엔 (전부터 출사할려고 생각했던)

 

수원화성을 갈까 장지역 유채꽃공원을 갈까

 

하늘공원을 갈까 고민하다가

 

인천사는 친구넘이랑 통화하다가 제가  조문이나 가자고 해서

 

수원사는 넘도 올라온다고 해서

 

결국 시청쪽으로가게되었습니다.


 

쏘나기가 내려 잠시 피했다가 청계천을 걷다가 광화문쪽으로 쭉 걷는데

 

전경들이 때거지로 그쪽을 막고있더군요

 

저쪽은 못갑니다. 다시 오던길로 돌아가서 나가라고 하더군요

 

 

나간후에 바깥쪽을 걸어다가보니 아예 전경버스로 둘둘말았더군요

 

사진에는 못담았지만 조선일보쪽도 마찬가지더군요

 

촛불항쟁때 많은분들이 조선동아를 비판하며

 

조선 동아 본사에 달결던지고 그럴때 조동이 사설동원해

 

머라고 하니 그이후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확실하게 국민혈세들여

 

전경부대를 쫙깔아 지켜주는 관행아닌 관행이 계속 유지되는거 같아

 

내가 내는 세금이 아까웠습니다.

 

 

중간에 버스에 보니 저런게 붙어있던데

 

저기서 말하는 국민에 나는 속할수가있는지 하는 생각이 잠시 머리를 스쳤습니다^^;

 

암튼

 

계속 걸어서 시청쪽을 가다가 추모줄 맨끝에 5:30분쯤에

 

계속 고인에 대한 이런저런애기를 하며친구들이랑 스게되었습니다.

 

시청광장을 개방했으면 가까운곳이라 좋았겠지만 최종목적지는

 

저길건너 덕수궁돌담을 둘둘감은 후에 대한문앞이라

 

엄청오래기달리게되었습니다

 

중간에 줄이 시청지하철역을 통하게되더군요

 

시청쪽은 전경들이 잔득앉아있어 걸어갈수도없구요

 

 

역사안 엄청 더웠습니다

 

웬일로 보통 지하철역사안은 요즘 에어콘 틀어 쉬원한데

 

역사내 방송들어보니 갑자기 모든 에어콘이 고장나 열심히 고치고있으며

 

6/1일까진 고칠거니 노약자나 애들은 더우면 나가라는 말나오고 있더군요

 

몇몇분들 누굴초딩으로 아냐?ㅡㅡ 이러고있구...

 

지하철안에선 일부분들이 별명쥐박 인상천박 경제쪽박 인상천박 언론속박 국민협박 민주주의핍박

 

등등의 표어를 들고계씬분들이있었습니다.

 

사진엔 얼굴이 나와서 PASS~^^;

 

 

줄이 덕수궁으로 바로 못가고 조선일보/서울시의회쪽으로되어있는데

 

중간에 어딘가에서 한겨레신문을 잔득들고와서 공짜로 가져가도된다고 해서

 

다들 한겨레를 보며 기달리는 시간 무료함을 달랬습니다.

 

바로 앞에 국내1언론사라는 조선일보가 있는데 다들 한겨레를 보는 풍경..기분 묘하더군요

 

 

 

이쪽도 건너편과 마찬가지로 전경버스들이 1차선을 차지하고 물새틈없이

 

막고있어 교통체증이 심하더군요

 

 

어떤분이

 

전경높은분들에게

 

시청앞호텔에서 니네들을 보면

 

전경은 군인으로 알텐데 군인들이 중무장하고 국민들을 째려보며

 

이렇게 하는게 올바르냐? 이러니까 다들 우리도 위에서 시키니 할뿐입니다. 라며 말하는데

 

불쌍하더군요. 제가 봐도 전경들대신 그냥일반 경찰들 몇세워놓고 폴리스라인 설치하면될일을

 

외국인들보기에 중무장한군인들로 이렇게 하는거 국민들도 전경들도 ...서로 피해가는일같아보여서..

 

 

 

암튼 서울시의회앞에서꺽여서 덕수궁 뒤쪽으로 쭉 ... 줄을 스면서 슬슬 ..친구들중 인천 수원서 온애들이

 

8시넘었다..지금밥먹고 집에가도 10~11시인디..이러면서 갈등하기시작했습니다

 

전 배고파서 쓰러져 죽는줄알았다는..ㅠ

 

 

중간에 노약자 몇분이 좀밖으로 나갈려고 하는데 그것을 경찰들이 막아서

 

약간의 실랑이가있었습니다.

 

저랑 친구들은 여기구조가 전경들이 쳐들어오면 꼼짝없이 다들 잡혀갈수밖에없는곳들이라

 

좀 불안불안...3시간넘게 서있다보니 배고프고 힘없을때라 행여 불상사가 일어나면

 

그냥몇대맞고 피안터지게 등위주로 맞고 잡혀가자..이런말이 오갈때였씁니다

 

그러다가 줄서있은지 4시간이 다되가 대한문근처가까이 가니

 

우는사람들도 있구 분위기가 숙연해지더군요

 

 

영정사진이 3군데 나눠져있더군요

 

전 친구들이랑 맨 왼쪽줄로 스게되었습니다


엄마 아빠 세대는 이승만이나 박정희 or 김영삼이나 김대중을 우리대통령이라고 하지만

 

제가 사회생활시작하고 21c를 시작하면서 제가 우리대통령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현재는 노무현밖에없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너무나 바보라서 불의와 타협하는것을 떠나 불의를 척살하지 못해 결국

 

역으로 당해버린 바보 노무현에게...

 

내가 이런식이라도 조문을 한다면 그건30.40년후일거라고 생각하고있던지라 너무나 당황스럽지만

 

암튼 잘가라고   니원칙과 생각을 지키며

 

이승에서처럼 고졸이라고

 

빈농의자식이라고 개무시당하던 세상이 아닌 좋은 세상에서 즐겁게 살기를 바란다는 말을 남겼습니다.ㅠ

 



하고나서 보니 전 맨 왼쪽에서 했더군요.



촛불들고 돌아다니면 계속 전경들이 끄라고 끄라고 해서 결국은 껐습니다.

 

다른분들은 모아놓더군요

 

암튼 이렇게 화창한 좋은날 거의 5:30~10 사이 4시간안팍의 조문이끝나자마자

 

현실적인 문제로 너무나 배고팠던 친구들과 저는 시청일대와 광화문일대를 돌아다녔습니다

 

다시 수원인천으로 가야할넘들인데 배가고파서 못가니..

 

원랜 2시간정도 걸린다고 치고 8시부터 가볍게 소주나 기울이며

 

노통생각이나 하면서 애기할려고했는데

 

시간이 너무나 오버된 관계로..



 

결국 종로근처서 24시간 하는 감자탕집을 찾아 소주없이

 

가볍게 뼈다귀감자탕과 냉채족발샐러든가먼가를 먹고 밥2공기비벼먹고

 

친구넘들이 수원에서..인천에서..왔는데..

 

ㅡ.ㅡ++해서

 

제가 계산을...하고

 

헤어졌습니다.




이런날에 이런거 하는데 시간을 너무많이 보낸게...좀 그렇지 않나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도

 

당분간 내가 우리대통령이라고 할 인재가 나타나기전에 이렇게 추모라도 하며 하루를 보낸거

 

다행이라고 생각할뿐입니다

by 잠룡 | 2009/05/25 22:34 | 내가쓴글 | 트랙백 | 덧글(0)

5/1 메이데이 ... 120여년전 돌아가신 미국노동자들에게 경의를..

오늘은 사회주의권이나 자본주의국가들 기타 이슬람권도 거의다 쉰다고 하고요.

 

웅..뭐 우리한국은 아직 100% 다 쉴수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오늘쉬는 분들 좀이라도

 

있는 상황에서 

 

5/1일을 전세계적차원에서 쉴수있는 기념할만한 날로 있게 해주신 120여년전 미국노동자들에게

 

(참고로 유혈낭자한 메이데이를 만들게 했던 미국은

 

5/1일을 피해서 9월 첫 월요일을 ‘노동의 날’로 하고있습니다)

 

그리고 20 년전의 한국노동자들에게 늦었지만 경의를 보냅니다.

 

 

ps

 

그런데 작년에 2mb 똘아이정부는

 

과거엔 급격한 성장과 물가상승으로 매년 임금을 조정할 필요가 있었지만,

이제는 비효율적이란 지적이 (재벌들로부터 나와)  노사 임금교섭을 2~3년에 한번씩,

단체교섭과 함께 하는게 바람직하다는 개풀뜯어먹는 소릴하다가 욕쳐먹었는데 요즘도 계속 추진중인지 모르겠군요

 

 

울나라 땅값 집값 교통비 공공비 생활비등등 올라가는 속도가 선진국포함중진국중에서 (경제공황으로각국이 디플레이션에 빠진 가운데

 

유일하게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고물가로 국민들이 고통받는게)

세계1,2위인 주제에 저런 소리를 하니 절라 재수없었는데..

 

암튼

 

제가 몇년전 5/1일관련해서 읽은

 

책값이 7천원인가? 밖에 안하는 얇은 책인데 짬날때 보시면

 

재밌어서 소개합니다.^^;

 


 

 

 

 

 

[도서] 서해역사문고-03 메이데이 100년의 역사

 

  

 

차례

1. 메이데이란 무엇인가
메이데이가 시작되다
메이데이 행사는 어떻게 치러졌는가
메이데이의 의의

2. 메이데이에 민족 해방을 외치다
노동자의 성장과 처음 맞은 메이데이
뜨거워진 메이데이 투쟁
지하로 숨어들어 격문을 뿌리다
항일 무장 투쟁과 함께하다

3. 해방 공간의 메이데이를 가다
전평의 지도 아래 노동자가 하나 되다
변질되어 가는 메이데이

4. 빼앗긴 메이데이와 다시 찾은 메이데이
빼앗긴 메이데이
근로자의 날
어용 노조 한국노총
민주노동조합운동의 성장
아! 다시 찾은 메이데이

 

 

 

 

[정운영의 如是我讀 나는이렇게 읽었다] 메이 데이의 핏빛 역사

고대인들은 5월 첫날 플로랄리아(Floralia) 축제를 열었다. 봄과 꽃의 여신 플로라를 기리는 이 축전은 단연 장미와 장밋빛 잔치였으리라. 기원전 253년 로마에서 비롯된 이 축제일에 즈음해서 현대인은 메이 데이(May Day) 행사를 치른다.

 

그러나 5월의 잔치답지 않게 메이 데이에는 피와 핏빛 얼룩이 가득하다. 역사학연구소가 집필한 『메이데이 100년의 역사』(서해문집, 2004)는 이런 얘기로 시작된다.

 

한쪽에는 100달러짜리 지폐로 담배 말아 피우는 사람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7~8달러의 주급으로 목숨을 부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개판이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개들의 세계는 절대로 그렇지 않으렷다.

 

이런 세상은 바뀌어야 하기에 미국노동총연맹(AFL)은 하루 8시간 노동을 내걸고 1886년 5월 1일 총파업을 단행했다. 시카고 시위에서는 3일 파업자에 대한 경찰 발포로 4명이 죽었다.

4일 헤이마켓 광장에서 열린 항의 집회에 폭탄이 터져 경관 7명이 숨지고, 대응 사격으로 200여명의 사상자가 났다.

 

 노조 지도자 8명을 범인으로 기소한 당국은 이듬해 처형 4명, 종신형 2명, 옥중 자살 1명으로 사건을 종결했다.

 

그러나 그것은 재판이 아니라 재판을 빌린 살인이었다. 피고인들의 성향이 무정부주의자라는 것뿐 어떤 유죄 증거도 밝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후 진술에서 그들 중의 하나는 “만약 그대가 우리를 처형함으로써 노동 운동을 쓸어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렇다면 우리의 목을 가져가라”(27쪽)고 외쳤다.

 

그는 또 “우리의 침묵이 오늘 우리의 목을 매다는 당신들의 사형 명령보다 훨씬 강력해지는 날이 오고야 말 것이다”(28쪽)라는 말을 남기고 교수대에 올랐다. 오죽했으면 런던에서 버나드 쇼가 “세상이 8명의 인민을 잃느니 일리노이 주 대법원의 법관 8명을 잃는 편이 낫다”고 직격탄을 날렸을까.

 

뒷날 재조사로 주지사는 그들의 혐의를 벗겨주었으나 6년 전에 가져간 목을 돌려줄 수는 없었다.

 제2 인터내셔널은 1890년 5월 1일을 기해 ‘만국 노동자의 시위’를 선언했다. 메이 데이의 효시였다.

 

정작 유혈로 메이 데이를 연출한 미국은 9월 첫 월요일을 ‘노동의 날’로 정해 딴판을 벌이고 있다.

메이 데이는 박래품(舶來品)이지만 반갑게도 이 책은 ‘메이 데이의 한국사’를 들려준다. 식민지 조선 노동자의 메이 데이 행사는 민족 해방을 위한 투쟁의 장이었다. 일제는 메이 데이 탄압에 혈안이 되었으며,

 

1924년 5월 2일 조선일보는 “시가에는 기마 순사의 말 자취 소리가 요란하고 사상 단체의 사무소 앞에는 사복 형사가 지켜 서서 무엇인지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면, 무산자는 소리 없이 압박에 묻혀 있고 그 대신에 경관대가 메이 데이를 축하하는 듯하더라”(57쪽)라고 썼다. 일제가 전쟁 준비에 광분하던 1938년 메이 데이도 ‘근로일’로 창씨 개명을 한다.

 

해방 공간에서 노동 운동을 주도한 것은 좌익계 전평(全評)이었다. 군정은 진보적 민주주의 정부 수립을 요구하는 등 ‘정치 운동’을 한다는 이유로 1947년 전평을 불법화했다. 대한노총이 이승만 정권의 충복이 되었는데,

 

 일례로 1956년 메이 데이 개회식에서 “이번 선거에서는 노동자의 은인인 이승만 박사를 절대 지지하자”(123쪽)고 용비어천가를 읊조릴 정도였다. 메이 데이는 공산 괴뢰 도당의 선전 도구라는 이승만의 훈시에 따라 1957년 대한노총은 3월 10일을 ‘노동절’로 정하고 정부의 승인을 받았다. 생일을 바꾼 것이다.

 

1963년 박정희 정권은 노동절을 ‘근로자의 날’로 개칭했다. 근로자란 지칭에는 천황과 국가를 위해 열심히 일한다는 일제의 통치 음모가 배었다고 한다.

 

군사 정권의 시녀를 자임한 한국노총은 박정희의 유신 정변이 “구국 통일을

 위한 영단”이고, 전두환의 독재 연장 기도마저 위기 해소를 위한 결단이라고 칭송했다

. 비뚤어진 역사를 바로잡는 데는 전태일의 분신과 김경숙의 죽음에서 6월 대항쟁까지 엄청난 투쟁과 희생이 따랐다.

 

드디어 1989년 재야의 민주 노동 세력은 “민주적인 노동조합 운동에 대한 탄압의 상징인 ‘근로자의 날’을 ‘노동자 불명예의 날’로 규정함과 아울러 메이 데이를 우리의 진정한 노동절로 엄숙히 선포한다”(208쪽).

 

그리고 1990년 메이 데이 기념 100년 만에 민주노총의 누룩 전노협이 결성된다.

이 책은 치열한 시대에 대한 치열한 보고서이다.

 

 

그래서 오늘의 눈으로 읽자면 다소 튀는 부분도 없지 않다. 1904년 4월 레닌은 “낡은 러시아는 죽어가고 있다. 자유로운 러시아가…다가오고 있다”(178쪽)고 치열한 레토릭의 메이 데이 기념사를 썼다.

 

 

2004년 4월 그 자유로운 러시아는 어디 있는가? 그것도 역사의 간지(奸智)라면 해방 공간에서의 함성대로‘노동자 환희의 날 메-데-’가 자본가의 대액일(大厄日)일 필요는 없으리라. 장미는 핏빛도 아름다우니!

by 잠룡 | 2009/05/01 12:17 | 내가쓴글 | 트랙백 | 덧글(0)

49년전 오늘 죽은 15살 한국 여중생의 유서...

49년전 오늘 대한민국정부는  

 

정부차원에서 수백명의 민간인들을 죽이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그 미치광이들의 정부를 타도한지 49년째 되는 날인데

 

너무 예전이야기인지 언론에서도 별로 다루질 않는군요.

 

오히려 친일파와 매국노들의 뛰어난 처세술을 찬양하고 그들을 근대화의 선구자 운운하는

 

괴상한 학설이 교과서에 실리며 이승만을 국부라며 그가 저지른 모든죄악을 모른척눈감고 오히려

 

조그만 장점이라도 찾아 침소봉대하는 웃기는 현실이 되었죠.

 

 

암튼

 

하늘을 공경하고 사람을 사랑하라.

 

입버릇처럼 애기하던 독실한 교회 장로이자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이기도 했던

 

이승만이 지배하던 49년전 대한민국의 1960년 4.19일 화요일.

1960년 4.19일 그날은 지금와선 피의 화요일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49년전 그날 한국에선 이승만정권의 무차별적인 학살로 인해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헌법에 보장된 권리를 행사해 반민주반자유부정부패에 대해 개선을 요구하던  

시민과 학생들이 서울에서만 104명 부산, 광주에선 27명이 이승만정권에 총살당했습니다.

전국적으로 계산하면 노동자 61명, 고등학생 36명, 무직자 33명, 대학생 22명, 국민학생·중학생 19명,기타 15명으로 총 186명이

 

이승만정부의 실탄발포에 아까운 생명을 잃고 6026명이 부상을 당해 끔찍한 피가 펑펑흐르던 날입니다.

결국 그래도 이승만이 계속 정권을 해먹겠다구 버티자

 

6일후인 4.25일 27개대학 258명의 교수님들이 이승만은 물러가라며 14개항 시국선언문을 발표하고

 

그후 400명의 대학교수님들이

4.19의거로 쓰러진 학생의 피에 보답하자면서

'이 대통령은 즉시 물러가라', '부정 선거 다시 하라', '살인귀 처단하라'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시위를 감행 서울시가를 행진하기 시작했습니다.

4.25 교수단 데모는 전국민적인 지지를 받아 다시 연이어 시민들과 학생들이 연이어 궐기하기 시작하고

 

이에 동북아의 미국 꼬봉 이승만을 지켜주던

 

주인국 미국의 정부마저 이승만에게 하야하라고 하자

 

끝까지 버티던 이승만은 결국 4.26 10시에국민이 원한다면 대통령을 사임한다고

 

하야성명을 발표 한후

 

환호하는 시민들이 파고다 공원에 있던 이승만의 동상 목에 줄을 걸고 끌고 다니는 가운데

 

결국 12년간 잔인한 피의 철권독재를 휘두르던 독재자 이승만은 대한민국 국민들의

민주혁명에 의해 쫓겨나 4.28에 경무대를 떠나 이화장으로 갔다가

 

1960년 5월 29일 부인과 같이 국민들 몰래 미국의 하와이로 도망가 살다가

 

결국은 대한민국 으로 못 돌아오고 해외에서 죽었습니다.

다음은 이러한 시대 49년전 4.19 오늘 이승만정권의 총에 맞은 죽은 15살 한 여중생의 유서입니다.

 

지금 기준으로 봐서도 너무나도 그당시의 상황을 잘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진영숙양(15세, 당시 한성여중 2년)의 유서>

시간이 없는 관계로 어머님 뵙지 못하고 떠납니다. 끝까지 부정 선거 데모로 싸우겠습니다. 지금 저와 저의 모든 친구들 그리고 대한민국 모든 학생들은 우리 나라 민주주의를 위하여 피를 흘립니다.

어머니, 데모에 나간 저를 책하지 마시옵소서. 윌들이 아니면 누구가 데모를 하겠습니까.

저는 아직 철없는 줄 잘 압니다. 그러나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길이 어떻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의 모든 학우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나간 것입니다. 저는 생명을 바쳐 싸우려고 합니다.

데모하다가 죽어도 원이 없습니다. 어머닌, 저를 사랑하시는 마음으로 무척 비통하게 생각하시겠지만, 온 겨레의 앞날과 민족의 해방을 위하여 기뻐해 주세요.

이미 저의 마음은 거리로 나가 있습니다. 너무도 조급하여 손이 잘 놀려지지 않는군요.

부디 몸 건강히 계세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저의 목숨은 이미 바치려고 결심하였습니다.
시간이 없는 관계상 이만 그치겠습니다.





 이 글의 주인공인 진영숙 양은 19일 오후 4시 학교를 파한 후 시위에 나가기에 앞서 홀몸인 어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일단 집에 갔다가 시장에 장사하러 나간 어머니가 돌아오지 않자 편지를 써놓고 거리로 나섰다가 

 성북 경찰서 앞으로 이동하던 버스 에서 구호를 외치다가

 (마치 월드컵때 울나라 팀이 이겼을때 걸거리에서  버스안에서도 대한민국 하며 했던 것처럼...)

 

버스안에까지 실탄 사격을 하던 경찰에 의해 총살 당했습니다.

 갠적으로 이 어린 소녀의 이 유서를 보면 100%는 아니더라도

 

그당시 목숨걸고 이승만의 퇴진을 요구하다 돌아가시거나 다치신 분들의 생각 이나 마음을 조금이라도 느낄수가 있겠더군요.

 근래 들어 어떤 반민주 비민주적인 신문사들은 이승만을 다시본다며 미화를 하고 있지만 이 4.19 시기에 조국의 미래를 위해 힘쓰다가  진영숙 양과 같은 수많은 이름을 알수 없는 돌아 가신분들이 계시길래 오늘날 우리들이 예전에는 못누리던 엄청난 자유를 느낄수 있는 현실에서 

 

 그분들의 희생과 피위에 세워진 대한민국에서 역사를 거꾸로 할려는 무리들을 보면서 얼마나 분노를 느끼실지 못난 후손들에게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실지를 생각하면 이분들에게 너무나 미안한 마음밖에 가질수가 없습니다.


 

그나마 다행히도 지금 정치권에서 어느당이라도 419혁명에 대해 현재 대한민국을 이룩한 것으로 좋게 평가하는 것에 대해

심지어 현 대통령마저 4.19는 성공한 혁명이라고 하는판이니

위안을 삼을뿐입니다..

ps

이승만이 쫓겨나는 계기가 되었던 3.15부정선거 와 대학 교수단 시국 선언문관련 글과 사진입니다.

3·15 부정 선거 지시 비밀 지령

가. 4할 사전 투표 : 투표 당일 자연 기권표와 선거인 명부에 허위 기재한 유령 유권자표, 금전으로 매수하여 기권하게 만든 기권표 등을 그 지역 유권자의 4할 정도씩 만들어, 투표 시작 전에 자유당 후보에게 기표하여 투표함에 미리 넣도록 할 것

나. 3인조 또는 5인조 공개 투표 : 자유당 후보에게 투표하도록 미리 공작한 유권자로 하여금 3인조 또는 5인조의 팀을 편성시켜, 그 조장이 조원의 기표 상황을 확인한 후 다시 각 조원이 기표한 투표 용지를 자유당측 선거운동원에게 제시하고 투표함에 넣도록 할 것

다. 완장부대 활용 : 자유당측 유권자에게 '자유당'이란 완장을 착용시켜 투표소 부근 분위기를 자유당 일색으로 만들어 야당 성향의 유권자에게 심리적인 압박을 주어 자유당에게 투표케 할 것

라. 야당 참관인 축출 : 민주당측 참관인을 매수하여 참관을 포기시키거나 여의치 않을 때는 적당한 구실을 만들어 투표소 밖으로 축출할 것

(『동아일보』, 1960년 3월 4일)


대학 교수단 시국 선언문(1960. 4. 25)

이번 4·19 참사는 우리 학생 운동 사상 최대의 비극이요, 이 나라의 정치적 위길르 극복하기 위한 중대 사태이다. 이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규정(糾正)이 없이는 이 민족의 불행한 운명을 도저히 만회할 길이 없다. 우리 전국 대학교 교수들은 이 비상 시국에 대처하여 양심의 호소로서 다음과 같이 우리의 소신을 선언한다. …

'이 대통령은 즉시 물러가라', '부정 선거 다시 하라', '살인귀 처단하라'

(『동아일보』1960. 4. 26)

 

 

다음사진은 1960년 4월 12일자 부산일보 조간 1면에 나온

 


 



이승만정권의 부정선거에 항의하다 행방불명되었다가
오른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처참한 상태로
마산 앞바다 에서 시체로 떠올라 발견된 마산상고생 김주열의 시체로

4.19혁명의 불을 당긴 경상남도 마산 시민의거의 도화선이 된 사진입니다.


 위 글과 사진만 보더라도 이당시 이승만정권의 폭정이 어떠 했는지
왜 어린 여중생이 저런 일기를 쓰고 혁명에 가담했어야만 했는지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암튼 저때 피흘리며 돌아가신 수많은 분들..

 

그분들이 보시기에 지금 대한민국의 모습은 그분들이 피를 흘리며 죽을 값어치가

 

있었던 모습이었는지.. 아닌지..

 

하는 생각이 좀 듭니다...

 

저분들이 타도했던 살인귀를 국부랍시며

 

찬양미화하는 반민주세력들이 광분하는 이때에

 

저때 돌아가신 분들이 중상을 입고 어떻게든 살아 지금까지 살아있었다면...60살전후일텐데..살아계셨다면

 

지금 한국의 모습을 어떻게 보실지..

 

암튼 오늘 하루...

 

다른 더 볼만한 많은 뉴스들이 있지만..

 

그래도 49년전에 누군가 우리들과 동갑이거나 연상이거나 아님

 

훨씬 어린 애들이 오늘날 우리들이 누리는 자유를 얻기 위해 피흘러 죽었다는 사실을

 

(당시 이승만정권이 사람을 너무 많이 총살하는  상황에서 국민학생 애들도

부모님 형,누나를 그만죽이세요 라며 시위에 나섰었습니다. 그래서 역시 많이 총맞아 죽었죠...)

 

기억해 주시길 바랍니다.

by 잠룡 | 2009/04/19 23:59 | 내가쓴글 | 트랙백(1)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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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룡 | 2009/02/19 15:38

대한민국을 좀먹는 신종친일매국노벌레 - 저패니쿠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넘들을 일컫던 미국인들의 표현]
IMF로 거덜나고 철저하게 망해 IMF의 식민지로 전락한 한국을
10년동안 수많은 국민들과 좌파정부(국제기준으로 중도우파정권입니다) 가 다시 일으켜 세워
외환보유고 2700억$로 세계4위
경제력세계11위
수출액2000억$에서 4천억$로 세계역사상 가장짧은 기간에 고성장달성
등등 수많은 기록을 갈아치우며 10년동안 IMF로 거덜날 대한민국을 다시 일으켜 세웠지만
불과 1년만에 대한민국을 말도안되는 고환율 정책과 (자원이 없어 대다수를 수입해서 가공해 수출해 먹고사는 나라에서
고환율정책을 쓰면 원자재값상승으로 인한 물가폭등과 이에 기반한 수출가 상승은 기초적인 내용인데 그것도 모르는 아마추어들덕에
나라 경제가 거덜나버렸죠)
1%의 부자들만을 위해 세금감면과 냈던 세금돌려주기로 돈많은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걷는 미국이나 다른 선진국들과 반대로
가며 수많은 국민들을 도탄에 빠지게 한것도 모자라
역사학자도 없는
은장도로 자결하도 라도 정결을 최고지선으로 여기던 조선의 처녀들 수백만명을 끌고 가 강제로 강간하던 일본을 위해 변병하며
몸팔러 돈벌려갔던 창녀운운하고
일제식민지배는 한민족의 축복운운하며
일본넘들을 최고로 치는 반한친일매국노들을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한국내 대한민국을 좀먹는 신종친일매국노벌레들에게도
2차세계대전 당시 미국인들 표현처럼
저패니쿠스 라고 명칭해야 하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by 잠룡 | 2009/01/03 14:19 | 내가쓴글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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